기고/식품의약품안전처 주류안전정책과 박희옥 과장

예전 동네양조장은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주전자 하나 들고 가면 넉넉하게 술을 담아주던 인심 좋은 양조장 주인이 생각난다. 어릴 적 아버지 심부름 갔던 술도가, 고두밥 찌는 증기와 술 익는 풍경이 기억 넘어 가물거린다. 그때부터 작은 양조장들은 대형화된 술 공장에 밀려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동네 양조장은 몇 십 년 전 건물 그대로인 곳도 많았다. 1990년대 막걸리 소비가 급감하면서 양조장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돈이 벌리지 않으니 건물도 양조시설도 고칠 수가 없었다. 영세한 양조장들은 품질 좋은 술 생산이 어렵게 된 것이다.

근대 주류 행정은 1909년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됐다. 당시 주세법은 밀조를 엄격히 금지해 집집마다 술을 빚어 마시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사라지게 됐다. 그 후 1962년 식품위생법에 주류제조업이 포함됐으며 1966년 3월 국세청 발족에 따라 제조 판매 면허제가 시행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세청의 주류 행정은 세원관리 측면에서 시작된 면이 강하고 부수적으로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60년간 세원 중심으로 관리된 양조장은 위생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일부는 술은 알코올이 함유돼 있어 부패 변질되지 않으니 먹고 탈 날이 없다고 했다. 고두밥 찔 때 발생하는 뜨거운 증기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도 양조장은 옛날부터 원래 그런 곳이라도 했다. 위생이 따라주지 않으니 고품질의 술을 제조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2000년도 후반부터 주류 산업이 커지고 주류 안전을 위협하는 유해요소 증가 등 주류시장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세청은 주류안전관리 업무를 직접 수행하기보다는 식품안전관리 전문기관인 식약처에서 담당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2010년 6월 주류안전관리를 현재의 식약처로 이관했다.

이관 초기, 양조장의 낙후된 시설과 위생수준 향상을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했다. 전국 6개 지방식약청이 선두에 나선 것이다. 손씻기, 위생복 착용, 매일 작업장 청소하기 등 기본 위생수칙부터 지도해 나갔다. 종업원들은 습관화되지 않아 힘들어했다. 습관화돼 정착되자 위생도 조금씩 나아졌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주류를 생산하려면 위생적인 제조설비와 작업장이 기본이다. 그런데 대형 주류회사를 제외하고는 시설이 열악한 경우가 많았다. 어떤 양조장은 곧 쓰러질듯해 도무지 위생과는 거리가 멀게 보였다. 영업자들은 시설투자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작업장에 구멍이 나고 천장이 뚫려 위생해충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설 개보수가 시급했다.

요즘은 양조장들은 변화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해충이나 오염원이 들어오지 못하게 시설을 개보수 했다. 원료처리실이나 제조가공실, 포장실을 별도로 분리해 술을 만드는 과정에 오염을 최소화한 것이다. 지난 6년간 지속적으로 지도점검을 강화하고 영업주의 위생의식을 깨우친 결과다.

식약처는 2013년 7월부터 주세법에 의해 주류제조면허를 받은 영업자를 식품제조가공업 영업등록을 하도록 했다. 주류제조업체들을 식품위생법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갖춘 것이다.

주류제조업체들의 위생수준을 획기적으로 올리기 위해 2014년부터 위생등급제를 실시했다. 위생수준에 따라 3단계(자율, 일반, 중점)로 구분해 우수한 곳은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하고 위생수준이 낮은 업체는 시정될 때까지 지속적인 지도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 위생관리 준수율과 종사들의 위생의식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유통 주류의 안전성 검사도 강화하고 있다. 명절 제수용, 여름 생맥주, 여성들이 좋아하는 낮은 도수의 술, 서민들이 즐겨먹는 대중주(소주, 막걸리, 맥주) 등 테마별, 계절별로 많이 판매되는 술을 집중 검사하고 있다. 물론 중국 고량주, 프랑스 포도주, 영국 위스키, 독일 맥주 등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는 주류도 수입단계에서부터 꼼꼼히 안전성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전국 1,100여 개의 주류제조업체가 있다. 일부 중대형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5억 미만의 영세업체들이 많다. 이들은 전문적인 양조 지식과 위생관리 요령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술은 발효과학이다. 술을 빚는 용기가 오염되거나 누룩 관리를 잘못하면 이상발효돼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식품당국이 나서 양조기술과 위생관리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이들을 위해 전국 4대 권역(수도권, 중부권, 영남권, 호남권)에 주류안전관리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양조 분야 전문 교수들을 중심으로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 기술지원을 하고 분석방법도 강의한다. 언제든지 위생교육을 신청하면 1대1 특별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올해는 단계별로 자율 주류안전관리인 양성을 추진한다. 업체 스스로 위생관리 능력을 올리고 준법감시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제도다. 식품위생법, 양조학,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이물관리 등 전문 교육을 이수하도록 할 예정이다.

얼마 전, 간담회에서 들은 이야기다. 막걸리 제조업체 A 연구소장은 ‘식약처가 처음에 위생관리를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겁을 냈다. 모이면 이구동성으로 엄격한 식품위생법 시설과 위생기준에 힘들다고. 하지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설이 개선되고 위생수준이 올라가니 품질이 저절로 좋아졌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술맛도 좋아져 우리 술에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한다. 물론 모든 양조장이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나.

식약처에서 주류안전관리를 시작한 지 6년이 흘렀다. 전통과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위생적인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유명 막걸리회사 사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전통만 고집하자고 하니 위생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더 이상 위생이 떨어진 우리 술을 찾지 않는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우리 술 양조장들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식약처가 주류안전관리를 위해 더욱 지원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일 것 같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팍팍한 인생살이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마시다가는 건강도 잃고 주변 사람도 잃을 수 있다. 자신의 주량에 맞는 음주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절주가 어렵다면 술을 마실 때 주변 사람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물과 안주를 충분히 먹어 되도록 취하지 말아야 한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이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칫 잘 못 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지역의 많은 양조장이 옛날 어머니가 집에서 손수 빚었던 술맛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식약처는 술을 마시는 모두가 고품질의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전통주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향에 식품안전을 입혀보는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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