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
‘협상대표는 동네북인가’

한미쇠고기협상 수석대표가 던지는 국가와 국익, 공직에 대한 근원적 물음

■민동석(전 한미쇠고기협상 수석대표) 지음/ 나남출판 펴냄/ 신국판 280쪽/ 정가 14,000원

한국과 미국 양국이 쇠고기와 자동차를 포함한 핵심 무역쟁점에 대한 재논의에 들어가기로 한 가운데 지난 2008년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쇠고기 협상의 실체를 전격 공개한 책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협상대표는 동네북인가’'가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시 쇠고기 협상을 진두지휘한 민동석 전 한미쇠고기협상 수석대표는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 협상이었지만 결국 나는 악의를 가진 거대한 이념세력에 희생됐다”며 “책을 통해 국가와 국익은 무엇이고, 공직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저자에 따르면 연령대에 상관없는 쇠고기 수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 전 미국대통령에게 직접 약속한 사안이다. 하지만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뒤집고 후임 정부에 부담을 전가했다.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이다.

한미관계를 발전시키고, 저렴한 쇠고기를 들여오겠다는 결단을 내린 이명박 정부는 PD수첩의 왜곡보도로 치명상을 입는다. 광우병 괴담에 현혹된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을 가득 메우더니 ‘정권퇴진’ 운동에 나섰다. 광우병 쇠고기는 빌미에 불과했다. 촛불시위의 표적은 이명박 정부였다. 광풍의 한가운데로 떼밀린 민 전 대표는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돼 30여년의 공직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민 전 대표만 사생(死生)의 벼랑 끝에 몰린 게 아니었다. 전국을 붉게 물들인 촛불시위대는 그와 그 가족에게 온갖 저주와 욕설,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을 우박처럼 쏟아냈다. 그는 이완용과 더불어 2대(大) 매국노로 불렸다.

하지만 민 전 대표를 아는 지인들은 그를, 국익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촛불정국에서도 소신을 갖고 당당하게 대응한 공직자의 표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미국을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참사에서 동포들을 구하기 위해 참혹한 현장을 누비던 중 한미 FTA협상이 출범하자 농업협상의 구원투수로 농림부장관에 의해 전격 스카우트된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나 쌀협상, 마늘협상 등 대형 농업협상에 참여했던 협상대표들이 줄줄이 희생양으로 몰린 것을 보고 아무도 한미 FTA 농업협상을 맡지 않으려던 때였다. 하지만 저자는 ‘위험하다고 피하는 것은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평소의 소신에 따라 죽음의 협상장에 몸을 던졌다. 그는 한미 FTA협상 농업분야 고위급대표를 맡아 미국의 공격을 온 몸으로 막아내며 협상을 매듭지음으로써 전체 한미 FTA협상을 타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한미 FTA 농업협상 타결의 임무를 완수한 뒤 외교통상부로 복귀절차를 밟던 중 또 다시 한미 쇠고기 문제의 해결사로 나서게 된다. ‘뜨거운 감자’인 쇠고기 문제는 겉으로는 광우병 위험성이 이슈였지만 사실은 국내 축산농가를 어떻게 보호하느냐가 최대 관건이었다.

따라서 누가 협상을 해도 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정치적 이슈였다.

민 전 대표는 “국가관계를 다루는 외교관으로서 쇠고기 문제를 계속 미뤄 한미관계를 뒤틀리게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는 초강수를 불사하면서 국제기준보다 더 많은 양보를 얻어냈지만 광우병 파동의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된다.

이 책은 한미 FTA 농업협상뿐만 아니라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한미 관계자의 치밀한 수 싸움과 성과, 예상치 못한 변수 등 숨 막히는 막전막후를 담고 있다.

특히 한미 쇠고기협상 수석대표의 최초 육성증언일 뿐만 아니라 31년 동안 외교현장에서 발로 뛴 현직 외교관이 밝히는 외교협상의 현장 이야기다. 정치적인 이해가 걸린 민감한 대외협상을 밝히는 외교관이 드문 풍토에서 이 책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로 국익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협상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역사적으로 귀중한 기록물이 될 것이다.

또한 PD수첩이 협상 타결 수개월 전부터 광우병 쇠고기 방송을 기획하며 이명박 정부의 협상 타결 선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새로운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저자는 PD수첩이 24년 전 영국 농장에서 찍은 주저앉는 소를 미국 광우병 소로 둔갑시켜 시청자를 속인 사실도 새롭게 폭로했다. PD수첩이 광우병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전인 1984년 영국 피츠햄 농장에서 주저앉는 소를 찍은 동영상을 미국 광우병 소로 둔갑시켜 언론사에 예고기사를 낸 뒤 방송에 내보내는 사기극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민 전 대표는 7월 1일 열린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에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정책은 선택입니다. 작은 나라가 사는 길은 명분보다 실리를 좇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100을 다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갈수록 외국과의 협상보다 국내협상이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협상대표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위험한’ 협상에 몸을 던지는 유능한 협상대표가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한중 FTA 협상이나 당장 눈앞에 닥친 한미FTA협상, 쇠고기논의 등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는 국민에게 드리는 저자의 간곡한 호소다.

그를 아는 한 언론인은 “평생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헌신한 한 통상전문 외교관이 광우병 광풍으로 투사가 돼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 국익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공직자가 있을까 하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5년 동안 거친 풍랑 속에서 벼랑 끝을 걸어온 민 전 대표는 “공직자인 내가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고 믿는다.

공직자는 사람들의 입술 위에서 춤을 추지 말아야 한다. 조작된 여론이나 선동보다 자기 앞에 놓인 길이 좁고 험하더라도 꿋꿋하게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땅의 공직자들은 쇠고기 협상과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민동석이라는 공직자를 한번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현직의 공직자들과 장차 공직을 꿈꾸고 있는 미래의 공직자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도록 권유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옥 같은 고통을 함께 견뎌 준 가족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공직자인 남편과 가족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일념으로 온몸으로 지탱하고 붙들어준 아내에게 그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또 공직자인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테러의 위협 속에서도 레바논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을 수행하고 안전하게 돌아온 사랑하는 아들과, 어려움 속에서도 마침내 전과목 만점으로 미국의 경영대학교를 수석 졸업하는 영광을 얻어 거친 풍랑으로 지친 가족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준 사랑하는 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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